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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걸었던 사람들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 남동쪽에 자리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들어서자, 군복 위에 판초 우의를 걸친 병사들이 수풀 사이를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작품은 조각가 프랭크 게일로드가 제작한 ‘순찰대(The Patrol)’로, 모두 19명의 병사를 표현하고 있다. 병사들은 편안하게 행진하는 모습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적이 나타날지 몰라 사방을 경계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과 긴장된 눈빛, 비바람을 맞으며 젖은 듯한 판초 자락에서 전쟁터의 불안과 두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오늘날의 평화로운 공원과 병사들의 긴박한 표정이 강한 대조를 이루면서,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19개의 병사상 옆에는 표면이 거울처럼 빛나는 검은 화강암 벽이 이어져 있다. 이 벽에 병사들의 모습이 반사되면 실제 조각상 19명과 반사된 형상 19명이 합쳐져 모두 38명처럼 보이는데, 이는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었던 북위 38선을 상징한다. 벽면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보관한 사진을 바탕으로 군인과 간호사, 군종요원, 정비병 등 전쟁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전쟁은 총을 든 보병만의 싸움이 아니라 부상자를 치료하고, 식량과 탄약을 운반하며, 장비를 수리하고 통신망을 유지한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치러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은 정부를 수립한 지 불과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생 독립국이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가난했으며, 전쟁에 대처할 충분한 힘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은 이름조차 생소했을 한반도에 와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기념공원에 새겨진 “그들이 알지도 못했던 나라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답한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는 문구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금 우리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희생뿐 아니라, 낯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세계 여러 나라 참전용사들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숫자로 마주한 희생과 “Freedom Is Not Free”의 무게
기념공원의 추모 연못 주변에는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 및 포로의 수가 새겨져 있다. 그곳에 기록된 미국 측 수치는 사망 5만 4,246명, 부상 10만 3,284명, 실종 8,177명, 포로 7,140명이다. 유엔 측 수치로는 사망 62만 8,833명, 부상 106만 4,453명, 실종 42만 267명, 포로 9만 2,970명이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숫자는 집계 대상과 기간, 전투 사망과 복무 중 사망의 구분 등에 따라 다른 공식 자료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기념공원에 새겨진 수치는 전쟁이 남긴 희생의 규모를 방문객에게 보여주려는 기록이다. 수십만, 수백만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읽고 있으면 처음에는 너무 커서 쉽게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이며 남편이자 형제였다고 생각하면 단순한 통계로 지나칠 수 없게 된다.
병사상 북쪽의 유엔 참전국 벽에는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전투병력이나 의료지원을 제공한 22개 나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국 이외에도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프랑스, 필리핀, 태국,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뉴질랜드,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가 전투부대를 보냈으며, 인도·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 등은 의료지원에 참여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약 15만 명의 외국 군인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에서 복무했고, 이 가운데 3,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1,800명 이상이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라고 설명한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와 종교도 달랐지만, 이들은 자유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공동의 뜻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 모든 기록의 맞은편에는 은빛 글씨로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져 있다. 우리말로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수많은 희생자의 숫자와 함께 바라보니 그 무게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자유는 어느 날 저절로 주어진 선물도 아니며,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유지되는 권리도 아니다. 누군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고향과 가족을 떠났고, 누군가는 부상을 입었으며,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배우고 일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도 바로 그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기념공원에서 만난 숫자와 문장은 한국전쟁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며, 평화를 지키는 일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기념공원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깊은 감사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가 자신의 미래를 걸었다. 그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하고 어려움에 처한 국가를 지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희생과 도움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로만 감사를 표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과거의 대한민국과 같은 어려움에 놓인 나라와 국민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은 이제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 책임 있게 참여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보답의 방법은 다양하다. 전쟁과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고, 개발도상국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교육과 보건, 농업기술과 산업기술을 나눌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농업·농기계·스마트농업 기술은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물자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현지 사람들이 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기계를 운용하며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유엔 평화유지 활동, 국제 재난구호, 의료봉사와 기술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도 과거에 우리가 받은 도움을 세계에 돌려주는 의미 있는 길이다.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 역시 계속 이어져야 한다.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초청하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과 유엔 참전의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감사는 기억할 때 비로소 지속되며, 기억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자유를 지켜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동시에 우리에게도 새로운 사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대한민국을 도왔던 나라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이제는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름도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다음 세대와 세계 여러 나라에 전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