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출발, 붉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

2022년 7월 19일 오전 7시 30분, 우리는 모압의 숙소를 출발해 새로운 하루의 여정을 시작했다. 전날에는 캐니언랜즈와 아치스 국립공원을 돌아보며 자연이 만든 거대한 협곡과 아치, 기묘한 바위들을 만났다. 이날의 계획은 모압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여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를 지나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 방향으로 이동해 앤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과 홀스슈 벤드(Horseshoe Bend)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루 동안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야 했지만, 사진과 영화에서 보던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풍경을 직접 확인한다는 기대감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모압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전날 보았던 아치스 국립공원의 붉은 바위산이 한동안 이어졌다. 도로 옆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바위와 둥글게 깎인 바위기둥이 나타났고, 멀리에는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절벽이 펼쳐졌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건물과 차량은 줄어들고, 파란 하늘 아래 메마른 고원과 낮은 관목이 끝없이 이어졌다. 길은 때로는 완만한 언덕을 넘었고, 때로는 지평선을 향해 직선으로 뻗었다. 넓은 도로 위를 달리며 한국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미국 서부의 광활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동하는 동안 호브엔위프 국립기념물(Hovenweep National Monument)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판도 보였다. 이 지역은 자연경관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이 살아온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지금은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처럼 보이지만, 물을 찾고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던 원주민들의 생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몬티셀로와 블러프 일대를 지나 모뉴먼트 밸리 방향으로 계속 이동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위의 색은 더욱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고, 수평 지층이 층층이 드러난 절벽과 탁자 모양의 메사, 고립된 바위기둥이 나타났다.
오전 11시 무렵, 도로 주변을 살펴보던 중 산비탈 위에 매우 독특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쪽에는 여러 겹의 붉은 암석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는 넓고 납작한 돌이 작은 받침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이 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모습 같았으며, 금방이라도 기울어져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주변을 돌아보며 여러 방향에서 바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자의 챙이 길어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접시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바위를 ‘인디언 캡(Indian Cap)’으로 기억했지만, 사진 속 지형의 정확한 명칭은 멕시칸 햇 록(Mexican Hat Rock)이다. ‘멕시칸 햇’은 멕시코의 전통적인 챙 넓은 모자인 솜브레로를 닮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인근의 작은 마을 멕시칸 햇도 이 바위에서 지명을 얻었다. 따라서 여행기를 작성할 때는 “인디언 캡으로 기억했던 멕시칸 햇 록”이라고 설명하면 당시의 기억을 살리면서도 정확한 명칭을 전달할 수 있었다.
단단한 모자와 약한 받침대, 멕시칸 햇 록

멕시칸 햇 록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저렇게 크고 무거운 돌이 어떻게 작은 바위 위에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가까이에서 보면 누군가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려 받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바위는 다른 곳에서 굴러와 우연히 얹힌 돌이 아니다. 원래는 주변의 산과 이어져 있던 하나의 커다란 암석층이었으며, 비와 바람, 흐르는 물과 기온 변화가 오랜 시간 주변의 약한 부분을 깎아 내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은 것이다.
멕시칸 햇 록 주변의 절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색과 갈색의 지층이 수평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지층은 만들어진 시기와 퇴적환경, 입자의 크기, 암석을 결합하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풍화와 침식에 견디는 힘도 서로 다르다. 윗부분의 넓고 납작한 암석은 상대적으로 단단하여 오랫동안 남았지만, 그 아래의 부드럽고 약한 지층은 비와 바람에 더 빠르게 깎여 나갔다. 그 결과 받침대는 점점 가늘어지고 위쪽의 단단한 암석은 챙이 넓은 모자처럼 돌출된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지형을 차별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균형바위라고 한다. 차별침식은 단단한 암석과 약한 암석이 같은 속도로 깎이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비가 내리면 물이 암석의 작은 틈으로 들어가 모래알을 붙잡고 있는 성분을 약하게 만든다. 겨울에는 틈 안의 물이 얼면서 부피가 커지고, 다시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위의 균열이 넓어진다. 강한 바람은 약해진 모래와 작은 돌조각을 날려 보내고, 중력은 지지력을 잃은 바위를 아래로 떨어뜨린다.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주변의 넓은 암석층은 사라지고 현재와 같은 독특한 모양만 남게 되었다.
바위의 윗부분은 약 18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것으로 소개되며, 옆으로 길게 돌출되어 있어 실제보다 더욱 위태롭게 보인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아직 아래쪽 받침대가 지지하는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사람이 모자를 머리 가운데에 쓰지 않고 약간 비스듬하게 걸쳐 쓴 것처럼 보여 아슬아슬한 느낌을 더한다. 다만 지금도 풍화와 침식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현재의 모습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받침대의 균열이 커지거나 약한 부분이 무너지면 위쪽의 거대한 바위도 결국 떨어질 수 있다.
멕시칸 햇 록은 전날 보았던 밸런스드 록과 닮은 점이 있으면서도 형태는 전혀 달랐다. 밸런스드 록은 커다란 둥근 바위 덩어리가 높은 기둥 위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면, 멕시칸 햇 록은 얇고 넓은 바위판이 작은 받침대 위에서 수평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지형 모두 사람이 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시간에 걸친 침식이 주변 암석을 제거하고 단단한 부분만 남긴 결과다. 같은 미국 서부의 붉은 사암지대에서도 지층의 성질과 균열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조형물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도 멕시칸 햇 록의 긴 변화 과정에서 잠시 나타난 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변 암벽과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은 모자 모양의 고립된 바위로 남아 있으며, 먼 미래에는 또 다른 형태로 변하거나 무너질 수 있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보이지만 지질학적 시간에서는 지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 위태로운 균형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자연의 힘이 함께 만든 순간적인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솜브레로를 닮은 길 위의 이정표와 여행의 상징성
멕시칸 햇이라는 이름은 이 바위의 윗부분이 멕시코의 전통모자인 솜브레로를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솜브레로는 강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챙을 넓게 만든 모자로, 뜨겁고 건조한 지역의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멕시칸 햇 록의 납작한 윗부분은 넓은 챙처럼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고, 그 아래의 작은 돌기둥은 모자를 쓴 사람의 머리처럼 보인다. 바위 전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어 솜브레로를 멋스럽게 비스듬히 눌러쓴 모습까지 연상시킨다. 자연지형의 생김새를 친숙한 사물에 비유하여 이름을 붙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바위를 ‘인디언 캡’으로 부르기 쉽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멕시칸 햇 록이다. 또한 ‘인디언’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수많은 북미 원주민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부르는 오래된 표현이므로, 오늘날에는 구체적인 부족명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 지역은 나바호 네이션의 북쪽 경계와 가까우며, 모뉴먼트 밸리 역시 나바호 부족공원으로 관리되는 원주민의 삶과 역사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멕시칸 햇 록 자체가 나바호 문화에서 특별한 종교적 상징이라는 근거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전설을 덧붙이기보다 솜브레로를 닮아 얻은 이름과 주변 원주민 지역에 대한 존중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멕시칸 햇 록은 단순히 재미있는 모양을 가진 바위에 그치지 않는다. 모압에서 모뉴먼트 밸리로 내려가는 여행자에게는 풍경이 새로운 단계로 바뀌고 있음을 알려 주는 자연의 이정표와 같다. 이곳을 지나면서 낮고 넓은 고원과 층층이 쌓인 붉은 절벽은 점차 모뉴먼트 밸리 특유의 거대한 뷰트와 메사로 이어진다. 따라서 멕시칸 햇은 아치스와 캐니언랜즈의 세계를 떠나 모뉴먼트 밸리의 장대한 풍경으로 들어가는 중간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우리에게도 이 바위는 단순한 휴식 장소가 아니라 다음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감을 높여 준 특별한 표지였다.
바위가 지닌 상징성은 ‘균형’과 ‘인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넓고 무거운 바위가 작은 받침대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은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강인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균형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비와 바람을 견디는 동안 계속 변하는 일시적인 상태다. 그래서 멕시칸 햇 록은 굳건함과 동시에 자연의 모든 존재가 변화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단단해 보이는 바위조차 시간 앞에서는 조금씩 깎이고 새로운 형태로 바뀐다는 점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시간의 힘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러 방향에서 멕시칸 햇 록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거대한 사람이 모자를 쓰고 사막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고, 가까이에서는 무거운 돌판이 작은 받침점 위에 절묘하게 얹힌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모자 모양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 장면은 그날 이동 중 만난 풍경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다. 유명 관광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일정이었지만, 길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연의 작품 앞에 잠시 멈춘 덕분에 여행의 기억은 더욱 풍성해졌다.
이날의 목적지는 모뉴먼트 밸리와 앤텔로프 캐니언, 홀스슈 벤드였지만 멕시칸 햇 록은 목적지 사이의 이동시간도 여행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여행의 감동은 반드시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간 명소에서만 얻는 것이 아니다. 도로를 달리다가 발견한 낯선 바위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 생성과정을 궁금하게 만들며, 오랜 시간이 만든 자연의 신비를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오전 11시 무렵 만난 멕시칸 햇 록은 모자를 멋지게 눌러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며 모뉴먼트 밸리로 이어지는 이날의 여정에 특별한 시작을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