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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벽을 따라 걷는 시간여행, 사우스햄튼 올드타운에서 만난 역사와 흔적

by blog7709 2026. 8. 1.

800년 역사의 건물에서 즐긴 첫날 저녁

사우스햄튼에 도착한 첫날 저녁, 올드타운의 버글 스트리트에 자리한 ‘듀크 오브 웰링턴(Duke of Wellington)’을 찾았다. 낮선 도시에서 처음 맞이하는 저녁이었지만, 오래된 목조 건물의 따뜻한 분위기 덕분에 편안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흔히 1338년과 관련된 유서 깊은 장소로 소개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건물의 기원은 13세기 초인 약 12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38년 프랑스와 제노바 연합군이 사우스햄튼을 공격했을 때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복구되어 15세기 말부터 술과 음식을 판매하는 펍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듀크 오브 웰링턴’이라는 이름은 워털루 전투 이후인 1815년부터 사용되었다. 건물 외벽의 검은 목재 골조와 밝은색 벽면, 층마다 조금씩 앞으로 돌출된 구조에서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영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적인 공간에서 연어요리를 주문해 저녁 식사를 하니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과거의 사우스햄튼을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드럽게 익힌 연어를 맛보며 오래전 항구를 드나들었던 선원과 상인들도 이 거리의 어느 식당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현대적인 항구도시의 모습 속에 수백 년 된 건물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사우스햄튼에서의 첫날은 화려한 관광지보다 오래된 펍에서 즐긴 따뜻한 식사로 시작되었고, 그 경험은 다음 날 올드타운의 역사를 직접 걸어서 살펴보고 싶다는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들어 주었다. Historic England의 건물 기록

 

1338년의 상처를 기억하는 중세 성벽을 걷다

다음 날 오전에는 사우스햄튼 올드타운을 둘러보기 위해 중세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성벽 주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돌담과 성문, 방어용 탑, 지하 저장고 등이 이어져 있어 번화한 현대 도시 한가운데에서 중세시대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우스햄튼은 영국 남부를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중세부터 유럽 대륙과 물품을 교역하던 중요한 관문이었다. 포도주와 양모를 비롯한 여러 상품이 이 항구를 통해 오갔고, 상인들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도시가 성장했다. 그러나 항구의 발달은 외부 세력의 공격 위험도 함께 불러왔다. 특히 1338년 프랑스군의 기습 공격으로 도시가 약탈되고 많은 건물이 불에 타는 피해를 보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술했던 방어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올드타운을 둘러싸는 견고한 석조 성벽이 완성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상당 부분도 14세기를 중심으로 축조된 것이다. 전날 저녁 식사를 했던 듀크 오브 웰링턴 역시 바로 이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이었으므로, 성벽을 걷는 동안 펍의 역사와 도시 전체의 역사가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골목과 건물들이 나타났고, 바깥에서 성벽을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우스햄튼 올드타운의 매력은 웅장한 유적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벽과 골목, 교회와 오래된 주택이 서로 이어지며 도시의 오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있다. 천천히 걸으며 돌 하나하나의 표면과 좁은 길의 형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항구를 지키려 했던 중세 사람들의 삶과 1338년의 아픈 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사우스햄튼 시의 성벽 역사 안내

 

성 미카엘 교회와 홀리루드 교회에서 만난 삶과 기억

성벽 안쪽으로 들어간 뒤 먼저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s Church)를 찾아갔다. 이 교회는 약 1070년에 세워진 사우스햄튼의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로, 현재까지도 본래의 용도로 사용되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중앙 탑의 아랫부분에는 노르만 시대의 구조가 남아 있으며, 선박이 항구를 찾아오는 데 도움이 되도록 18세기에 첨탑이 더해졌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함보다는 수백 년 동안 주민들의 기도와 일상이 이어져 온 공간에서 느껴지는 차분함이 먼저 다가온다.

 

 

성 미카엘 교회를 둘러본 뒤에는 하이 스트리트에 있는 홀리루드 교회(Holyrood Church)를 찾았다. 1320년경 건립된 이 교회는 항구와 선원들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선원들의 교회’로 불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우스햄튼이 폭격을 받으면서 교회도 심하게 파괴되었다. 전쟁 후 완전하게 복원하는 대신 벽체와 탑 일부를 폐허의 모습으로 보존했으며, 오늘날에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상선 선원들을 추모하는 기념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붕 없이 하늘이 보이는 교회 내부와 상처 입은 석조 벽을 바라보면 전쟁이 남긴 아픔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온전한 모습으로 예배가 이어지는 성 미카엘 교회와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홀리루드 교회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사우스햄튼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오랫동안 지켜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날에는 유서 깊은 건물에서 연어요리를 맛보고, 다음 날에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두 교회를 둘러본 이번 여행을 통해 사우스햄튼 올드타운은 단순한 옛 시가지가 아니라 중세의 번영과 외세의 침입, 해양도시의 발전과 전쟁의 상처가 함께 기록된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성 미카엘 교회 공식 문화유산 기록, 홀리루드 교회 문화유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