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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낭만이 현실이 된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해발 약 2,166m의 피르스트에 도착하자 눈앞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 설산,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장대한 풍경이 펼쳐졌다. 산 정상부에는 아직 많은 눈이 남아 있었지만, 아래쪽 계곡과 마을에는 초록빛 초원이 펼쳐져 한 장면 안에서 겨울과 봄을 동시에 만나는 듯했다. 맑은 햇빛을 받은 설산은 눈부시게 빛났고, 거대한 봉우리 사이로 이어지는 계곡은 멀리 그린델발트 마을까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피르스트는 아름다운 알프스의 경관과 다양한 산악 체험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인 여행객에게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라는 특별한 의미도 지닌다. 융프라우 철도 공식 안내에서도 그린델발트 피르스트를 드라마의 스위스 촬영지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윤세리와 리정혁이 스위스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과 패러글라이딩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이 지역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피르스트는 많은 시청자에게 낭만적인 여행지로 기억되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감탄했던 풍경을 실제로 바라보니 화면 속 장면과 현실의 경계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직접 만난 피르스트의 자연은 드라마보다 훨씬 크고 생생했다. 사진 속에서도 눈 덮인 산맥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현장에서 바라보면 산의 높이와 계곡의 깊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람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관광객들은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렸고, 어떤 사람들은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며 그 분위기를 마음에 담았다. 피르스트는 단순히 유명한 드라마의 촬영지를 확인하는 장소에 머무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국경과 시간을 넘어 다시 만난다는 드라마의 이야기에 알프스의 광활한 자연이 더해지면서 여행객에게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나에게도 이곳은 곧 대학 시절의 특별한 기억을 불러오는 장소가 되었다. 융프라우 철도의 《사랑의 불시착》 스위스 촬영지 안내
설산을 배경으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더와 관광객들
피르스트의 풍경을 바라보던 중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알록달록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더들이었다. 이륙장 주변에는 비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바닥에는 노란색과 주황색을 비롯한 여러 색상의 캐노피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조종자는 장비를 점검하고 줄이 서로 엉키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다음,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살폈다. 적절한 바람이 불어오자 캐노피가 공기를 품으며 머리 위로 솟아올랐고, 조종자가 경사면을 향해 몇 걸음 달리자 몸이 땅에서 부드럽게 떠올랐다. 하늘로 올라간 패러글라이더는 눈 덮인 산봉우리와 거대한 암벽 사이를 천천히 활공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작은 새처럼 보였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날개는 설산의 웅장함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었다.
피르스트에서는 전문 조종자와 동호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파일럿과 함께 비행하는 탠덤 패러글라이딩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비행 경험이 없는 관광객도 숙련된 조종자와 장비를 함께 착용하고 교육과 안전점검을 거친 뒤 알프스 하늘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출발을 앞둔 관광객의 얼굴에서는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고, 이륙에 성공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에는 주변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린델발트의 계곡과 초원은 전혀 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 같았다. 바람의 흐름을 따라 선회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이 한 대씩 계곡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드라마의 한 장면이 눈앞에서 다시 펼쳐지는 듯했다.
패러글라이딩은 자연과 맞서는 활동이라기보다 바람의 방향과 상승기류를 읽으며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비행이다. 따라서 맑은 하늘만으로 비행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풍속과 풍향을 비롯한 기상조건과 현장 전문가의 안전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은 여러 대의 패러글라이더가 동시에 하늘을 수놓고 있어 피르스트가 왜 항공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장소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발아래에는 그린델발트 마을과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정면에는 웅장한 설산이 솟아 있으니 비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대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공식 안내
대학 시절 행글라이더의 추억과 다시 만난 비행의 꿈
하늘을 자유롭게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더를 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학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행글라이더를 타본 경험이 있다. 지금처럼 항공레포츠에 관한 정보와 장비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행글라이더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도전이었다. 삼각형의 커다란 날개 아래 몸을 매달고 바람을 받으며 달리던 순간,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서 느꼈던 긴장과 해방감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륙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일단 공중에 떠오르면 땅 위에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익숙했던 산과 들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고, 바람에 몸을 맡겨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에는 인간이 새처럼 날고 싶어 했던 오랜 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는 날개의 형태와 조종 방법에서 차이가 있지만, 바람을 이용해 하늘을 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피르스트에서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젊은 시절 장비를 준비하고 바람을 기다리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조종자들이 캐노피를 펼치고 줄을 정리하는 모습, 이륙 직전 바람을 확인하는 진지한 표정,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 뒤 하늘로 부드럽게 올라가는 순간이 낯설지 않았다. 특히 관광객과 함께 비행하는 탠덤 패러글라이더를 보면서 나도 다시 한번 알프스의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비행 자체에 대한 도전과 성취감이 컸다면, 이제는 눈 덮인 알프스와 그린델발트 계곡을 천천히 바라보며 인생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비행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피르스트는 나에게 단순한 유명 관광지나 드라마 촬영장 이상으로 남았다. 다른 관광객은 《사랑의 불시착》의 주인공들이 다시 만난 장소로 기억할 수 있고, 패러글라이딩을 처음 경험한 사람은 용기를 내어 하늘로 날아오른 날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곳은 대학 시절 행글라이더를 타며 품었던 젊은 날의 열정과 자유를 다시 만난 장소였다. 세월이 흐르면 몸과 환경은 달라지지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날고 싶어 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록달록한 패러글라이더가 설산 앞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하나의 하늘 아래 이어지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피르스트에서 보낸 시간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 여행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비행의 추억과 꿈을 다시 꺼내 본 소중한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