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캐니언의 감동을 품고 다시 길 위에 서다
셔틀버스를 타고 자이언 캐니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거대한 붉은 절벽과 버진강을 바라본 시간은 미국 서부 여행에서 쉽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고, 잠시 내려놓은 가방에서 다람쥐가 음식을 꺼내 달아나는 뜻밖의 장면도 만났다. 관광객들이 야생동물을 쫓거나 해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모습에서는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자이언의 웅장한 암벽은 자연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었고, 작은 다람쥐는 그 자연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했다.
자이언 국립공원을 떠나 솔트레이크시티를 향해 다시 차에 올랐지만, 붉은 사암 절벽이 만들어 낸 장엄한 풍경은 한동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자이언의 산들이 조금씩 멀어질 때에는 아쉬움도 컸다. 오래 기다려 찾아온 장소였지만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여행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여행지와 작별하는 일은 그 장소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보고 느낀 감동은 사진과 기억 속에 남아 이후의 여정에도 계속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이언 지역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는 일반적으로 주간고속도로 I-15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거리는 약 300마일 안팎으로, 쉬지 않고 달려도 네 시간 이상이 필요한 긴 구간이다. 남부 유타의 붉고 건조한 협곡을 벗어나 북쪽으로 갈수록 고원의 모습과 산세, 들판과 도시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진다. 같은 유타주 안에서도 사막의 붉은 암벽과 눈이 많이 내리는 산악지역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자이언에서의 감동을 마음에 담고 달리는 길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라, 미국 서부의 넓은 지형과 다양한 자연환경을 몸으로 확인하는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소나기 뒤 하늘에 나타난 무지개라는 뜻밖의 선물

솔트레이크시티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던 중 하늘의 표정이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지만 다른 쪽에는 짙은 구름이 모여들었고, 멀리에는 소나기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유타 여행을 시작한 첫날에도 산악도로에서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기 때문에 변화가 빠른 서부의 날씨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넓은 고속도로에서 비구름과 햇빛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풍경은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비가 지나간 뒤 구름 사이로 빛이 들어오자 차창 밖 하늘에 희미한 색의 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름 사이의 빛이라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 빨강과 주황, 노랑, 초록빛이 이어진 무지개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들판과 먼 산을 배경으로 하늘에 걸린 무지개는 답답한 건물 사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계속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무지개가 산과 들판을 따라 함께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지개는 햇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고 반사된 뒤 여러 색으로 나뉘어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원리를 알고 있어도 여행 중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직접 마주하면 특별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전날에는 갑작스러운 소나기 뒤 시더 캐니언의 암벽을 밝히는 황금빛을 보았고, 이날에는 자이언을 떠나는 길에서 무지개를 만났다. 비는 운전과 관광을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그 비가 지나간 자리에 햇빛이 더해지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타난다. 그래서 무지개를 바라보는 동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도 갑작스러운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견디고 난 뒤에는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빛을 만날 수 있다. 자이언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길 위에서 만난 무지개는 마음을 밝게 해 주는 자연의 따뜻한 위로였다.
동계올림픽의 도시 솔트레이크시티
무지개가 서서히 희미해진 뒤에도 그 장면이 남긴 설렘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유타주의 주도이자 2002년 제19회 동계올림픽이 열린 솔트레이크시티였다. 1995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개최지로 결정된 뒤, 2002년 2월 전 세계의 겨울 스포츠 선수들이 이 지역에 모였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개·폐회식과 빙상경기 등이 열렸고, 주변의 파크시티와 와사치산맥 일대에서는 스키와 설상 종목이 진행되었다.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라고 하면 경기장과 선수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배경에는 솔트레이크시티 주변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 동쪽으로는 높은 와사치산맥이 이어지고, 서쪽에는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된 그레이트솔트호가 펼쳐져 있다. 건조하고 넓은 분지와 눈이 많이 내리는 높은 산이 가까이 있어 도시생활과 겨울 스포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솔트레이크시티는 2002년 대회를 통해 겨울 스포츠 도시로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으며, 당시 건설하고 정비한 경기시설과 교통 기반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선수 훈련과 시민의 여가활동에 활용되었다. 올림픽은 짧은 기간에 열리지만, 그 준비와 유산은 도시의 모습과 주민들의 삶에 오랫동안 남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자이언 캐니언에서는 수백만 년 동안 형성된 자연의 역사와 마주했고, 솔트레이크시티로 향하는 길에서는 인간이 도전과 협력을 통해 만든 올림픽의 역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두 장소를 연결하는 도로 위에서 만난 무지개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를 이어 주는 아름다운 다리처럼 느껴졌다. 붉은 협곡을 떠나는 아쉬움, 무지개를 발견한 기쁨, 올림픽 개최 도시를 처음 만난다는 기대가 한날의 여정 속에 겹쳐졌다.
여행은 유명 관광지에 도착해야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의 평범한 도로에서도 날씨와 빛, 우연한 풍경이 오래 기억될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자이언의 거대한 절벽이 마음에 경외심을 남겼다면, 북쪽으로 달리는 길에서 본 무지개는 앞으로의 여행도 좋은 순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이 보내 준 특별한 환영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동계올림픽의 도시 솔트레이크시티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