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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코끼리 ‘헨리’ 앞에서 떠올린 홋카이도의 추억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자리한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 건물은 거대한 기둥과 넓은 계단, 둥근 아치형 창문이 어우러져 있어 외관만으로도 웅장함이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중앙 로툰다가 나타났고, 그 중심에는 커다란 상아를 가진 대형 코끼리가 서 있었다. 실물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가 코를 높이 들고 금방이라도 앞으로 걸어 나올 것 같은 모습은 박물관에 들어온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몸집과 다리, 상아의 크기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졌고, 어린이와 관광객들은 코끼리 주변에 모여 사진을 촬영하며 감탄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에는 거대한 몸집과 긴 상아 때문에 마치 선사시대의 매머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진 속 전시물은 매머드가 아니라 아프리카코끼리 표본으로, 박물관에서는 친근하게 ‘헨리’라고 부른다. 헨리는 높이가 약 4m이고 무게가 약 11톤에 이르는 아프리카코끼리로, 1959년부터 자연사박물관 중앙 로툰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코끼리 아래의 전시공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의 생태와 진화의 역사, 밀렵으로 인한 위기와 자연환경 보전의 필요성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단순히 거대한 동물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야생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다.

헨리를 바라보는 순간 일본 홋카이도 여행에서 방문했던 추루이 나우만코끼리기념관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흔히 매머드박물관으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홋카이도 마쿠베쓰정 추루이 지역에서 발견된 나우만코끼리 화석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1969년 농로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세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한 개체에 해당하는 상아와 어금니, 척추와 갈비뼈, 다리뼈 등 많은 화석이 수습되었다. 그 박물관에서 복원된 골격과 발굴과정을 살펴보며 아주 오래전 홋카이도에도 거대한 코끼리가 살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추루이에서 만난 나우만코끼리는 화석을 통해 과거를 보여주었고, 워싱턴에서 만난 헨리는 실제와 같은 생생한 모습으로 현재의 자연과 생명보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만난 두 코끼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공룡 뼈대가 들려준 지구의 오랜 역사

중앙 로툰다에서 헨리를 충분히 바라본 뒤 공룡과 고대 생명체를 전시한 화석관으로 이동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공룡 골격들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천장 가까이까지 솟은 뼈대를 올려다보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뒤로 젖혀야 했다. 책이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공룡을 실제 화석과 정교하게 복원된 골격으로 마주하니 크기와 형태가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거대한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의 골격을 비교해 보면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먹이를 구했으며,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턱을 가진 육식공룡, 넓은 몸과 긴 꼬리로 균형을 잡았던 초식공룡의 특징이 뼈 하나하나에 남아 있었다.
전시의 중심은 공룡 자체의 크기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딥 타임’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구가 형성된 뒤 생명체가 출현하고 번성하며 멸종한 긴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의 삶은 길어야 백 년 안팎이지만,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 년에 이른다. 그 긴 시간 동안 대륙은 이동했고 기후는 끊임없이 변했으며, 바다와 육지에서는 수많은 생물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대도 영원하지 않았고, 대멸종 이후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포유류와 인류가 등장할 수 있었다. 한 생물의 화석을 관찰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뼈를 보는 일이 아니라, 그 생물이 살았던 환경과 당시 지구의 기후를 읽는 일이었다.
전시장에는 공룡뿐만 아니라 고대 해양생물과 식물화석, 포유류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표본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화석을 순서대로 살펴보니 생명체의 형태가 환경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생물은 새로운 조건에 적응해 살아남았지만, 어떤 생물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다. 이러한 전시는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를 생각하게 했다. 공룡의 멸종은 먼 과거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자연환경이 급격하게 바뀔 때 생명체가 어떤 위기를 맞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경고이기도 했다.
자연사박물관은 오래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과거의 증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거대한 교육공간이었다. 스미스소니언의 화석관에서는 실제 화석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공룡과 지구환경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거대한 골격 앞에 서 있으니 인간 역시 지구의 긴 역사 속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프 다이아몬드의 신비와 한 건물 안에 담긴 자연의 보물
공룡 전시를 관람한 뒤에는 지질·광물·보석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는 지구 내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광물과 암석, 형형색색의 보석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자수정과 에메랄드, 루비와 사파이어를 비롯해 크기와 색상, 결정구조가 서로 다른 광물들을 살펴보니 자연이 만들어 낸 형태와 색채가 얼마나 다양하고 정교한지 감탄하게 되었다. 농업과 기계, 환경과 에너지 분야를 연구해 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광물도 단순히 아름다운 돌로만 보이지 않았다.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도 압력과 온도, 결정이 만들어지는 환경에 따라 성질과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보석의 아름다움 뒤에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질학적 과정이 숨어 있었다.
많은 보석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관람객이 많이 모인 전시물은 호프 다이아몬드였다. 짙은 청색을 띠는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의 작은 투명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인 목걸이 중앙에서 신비로운 빛을 내고 있었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무게가 45.52캐럿인 천연 청색 다이아몬드로, 인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왕실과 수집가들을 거쳤으며, 소유자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저주의 전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전설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연이 만들어 낸 깊고 오묘한 청색이었다. 조명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회청색과 짙은 남색이 교차했고, 작은 보석 하나에 지구의 지질학적 시간과 인간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의 관람은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에서 시작해 공룡시대와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 그리고 희귀한 보석의 세계로 이어졌다. 헨리를 보며 홋카이도의 나우만코끼리기념관을 떠올렸고, 공룡 골격 앞에서는 생명의 번성과 멸종을 생각했으며, 호프 다이아몬드 앞에서는 자연이 만들어 낸 시간과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각각의 전시는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였지만 모두 지구가 오랜 세월 동안 남긴 기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코끼리와 공룡은 생명의 역사를, 암석과 다이아몬드는 지구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전시물이 워낙 많아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는 어려웠다. 관심 있는 전시 앞에서 잠시만 머물러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만큼 자연사박물관은 어린이와 학생뿐 아니라 지구와 생명, 과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장소였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박물관에 들어갈 때 보았던 헨리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시작된 코끼리에 대한 기억이 워싱턴 D.C.에서 다시 이어지고, 공룡과 다이아몬드라는 새로운 기억까지 더해졌다. 한 나라의 박물관을 방문한 경험이 과거의 여행과 연결되고 또 다른 배움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