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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르스트에서 바흐알프제로, 설렘을 안고 시작한 알프스 하이킹
그린델발트 피르스트에서 클리프 워크와 패러글라이딩을 구경한 뒤, 알프스의 보석으로 불리는 바흐알프제를 보기 위해 하이킹을 시작했다. 바흐알프제는 해발 약 2,265m에 자리한 산정호수로, 날씨가 맑고 수면이 잔잔한 날에는 슈렉호른을 비롯한 눈 덮인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이 거울처럼 호수에 비치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인터넷과 여행 안내서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반영 사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실제 풍경을 직접 확인한다는 기대가 컸다. 피르스트 곤돌라 상부역에서 바흐알프제까지는 잘 정비된 산길이 이어지며, 보통 편도 5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거리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보였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인 만큼 평지에서 걷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출발 직후에는 완만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 나타났고, 걸음을 옮길수록 호흡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러나 주변에 펼쳐진 풍경은 힘든 줄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등산로 한쪽으로는 거대한 설산과 깊은 계곡이 이어졌고, 다른 쪽으로는 겨울의 흔적처럼 남은 눈밭과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갈색 초원이 교차했다. 고도가 높고 주변을 가리는 나무가 거의 없어 시야가 매우 넓었으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마다 새로운 알프스 풍경이 펼쳐졌다. 등산객들은 저마다 편한 속도로 걸으며 사진을 촬영했고, 일부는 길가에 앉아 설산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이날은 하늘이 유난히 맑고 햇볕도 따뜻했다. 산 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더워져 자연스럽게 반팔 차림으로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기 때문에 햇볕이 피부에 얼마나 강하게 닿고 있는지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약 1시간 동안 산길을 걸으면서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푸른 호수에 비친 설산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바흐알프제라는 이름이 보이는 이정표를 지나 마지막 언덕을 넘을 때에는 긴 산길 끝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듯한 설렘도 느껴졌다. 피르스트에서 출발해 바흐알프제로 이어지는 길은 호수만을 보기 위한 이동로가 아니라, 그린델발트의 높은 산과 계곡을 천천히 감상하는 하나의 완성된 여행이었다. 곤돌라 안에서 빠르게 지나쳤던 풍경을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바라보니 알프스가 훨씬 가까이 다가왔다.
푸른 반영 대신 마주한 얼어붙은 호수와 아쉬움

한 시간가량의 하이킹 끝에 바흐알프제에 도착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모습은 출발 전에 기대했던 풍경과 전혀 달랐다. 푸른 물 위에 설산과 하늘이 선명하게 비치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호수는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였다. 수면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가장자리 일부에서만 옅은 청록색 물빛이 드러나고 있었다. 두 산 사이에 자리한 호수는 여전히 겨울 한가운데 머물러 있는 듯했다. 호수 주변의 산비탈에도 많은 눈이 남아 있었으며, 햇볕을 받은 눈과 얼음은 새하얗게 빛났다.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그 아름다운 하늘을 담아 줄 열린 수면이 없었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산봉우리와 하늘이 물에 비쳐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이날은 얼음이 거울의 역할을 대신하지 못했다.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지 않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녹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호수, 수면에 대칭으로 비치는 설산, 그 앞에서 촬영하는 아름다운 기념사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라도 방문 시기와 기온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실감했다. 산 아래 그린델발트에는 봄기운이 가득했고 초원에는 꽃이 피어 있었지만, 해발 2,265m의 바흐알프제에는 겨울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 달력으로는 봄이었지만 고산지대의 계절은 마을보다 훨씬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뜻하고 맑은 날씨만 보고 호수도 모두 녹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얼어붙은 호수를 천천히 바라보니 처음의 실망과는 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하얀 얼음 사이로 드러난 청록색 물과 검은 바위, 눈이 남은 산비탈과 짙은 파란 하늘이 만들어 낸 풍경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여름의 바흐알프제가 설산을 담는 푸른 거울이라면, 이날의 바흐알프제는 겨울과 봄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대한 자연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호수 가장자리에서는 얼음이 조금씩 갈라지고 녹은 물이 새로운 수면을 만들고 있었다. 기대했던 풍경을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과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히려 얼어붙은 바흐알프제는 내가 실제로 방문했던 계절과 그날의 기온을 증명하는 특별한 모습이었다. 언젠가 여름에 다시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보지 못한 산과 하늘의 반영을 만나고 싶다는 새로운 여행의 이유도 생겼다.

반팔로 걸은 네 시간, 팔에 남은 일광화상과 고산 하이킹의 교훈
바흐알프제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을 촬영한 뒤 다시 산길을 걸었다. 피르스트에서 호수까지 이동하고 주변 경치를 감상한 시간과 돌아오는 구간을 포함하니 전체 하이킹은 4시간 이상 이어졌다. 날씨가 워낙 좋았고 바람도 시원해 걷는 동안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햇볕 아래에서도 덥지 않아 반팔 옷차림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산지대의 맑고 시원한 공기는 강한 자외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 될 수 있었다. 등산로에는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나 건물이 거의 없었고, 팔은 오랜 시간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게다가 주변에 남아 있던 넓은 눈밭과 얼음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직접 내려오는 햇볕뿐만 아니라 지면에서 반사되는 자외선에도 계속 노출되고 있었다.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온 뒤에야 팔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햇볕에 조금 그을린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감과 통증이 심해져 일광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중 날씨가 맑은 것을 큰 행운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맑은 날씨 때문에 뜻밖의 화상을 입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고도가 1,000m 높아질 때마다 자외선 수준은 약 10% 증가할 수 있으며, 눈은 자외선을 최대 80%까지 반사할 수 있다. 바흐알프제처럼 해발 2,000m가 넘고 눈이 넓게 남아 있는 장소에서는 기온이 시원하더라도 자외선 노출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고산 하이킹에서는 반팔만 입기보다 통풍이 잘되는 긴소매 옷을 준비하고, 노출되는 피부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충분히 바른 뒤 일정 시간마다 덧발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챙이 넓은 모자와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선글라스, 충분한 물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특히 시원한 바람이 불면 피부가 뜨겁게 느껴지지 않아 햇볕에 얼마나 오래 노출되었는지 잊기 쉽다. 몸이 덥지 않다는 것과 자외선이 약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바흐알프제에서 기대했던 푸른 호수의 반영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얼어붙은 산정호수의 특별한 모습과 고산지대에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함께 얻었다. 팔에 남은 화상의 흔적은 한동안 불편했지만, 그것마저도 맑은 알프스 하늘 아래 4시간 이상 걸었던 하루의 생생한 기록이 되었다. 다음에 다시 바흐알프제를 찾는다면 호수가 녹는 시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긴소매 옷과 자외선 차단제를 철저히 준비해 푸른 수면에 비친 설산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