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

2022년 7월 16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의 일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파운틴 페인트 팟에서 끓어오르는 진흙과 수증기를 보았고, 올드 페이스풀에서는 기다림 끝에 하늘로 솟구치는 거대한 물기둥을 만났다. 오후에는 웨스트 섬 가이저 베이슨으로 이동해 뜨거운 온천과 드넓은 옐로스톤 호수를 함께 바라보았다. 수많은 지열 지형과 야생동물을 만났으니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몸에는 피로가 쌓였지만, 옐로스톤을 떠나기 전까지 창밖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커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오후 8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도로 주변에서 유난히 많은 수증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여러 간헐천 지대를 둘러보았지만 이곳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는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과 또 달랐다. 한두 곳에서 가느다랗게 올라오는 정도가 아니라 넓은 지대 전체가 하얀 증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루의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생각보다 ‘저 안에는 어떤 모습이 숨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더 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특별해 보여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Midway Geyser Basin)이었다.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이라는 이름은 어퍼 가이저 베이슨과 로어 가이저 베이슨의 중간에 자리한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규모가 아주 넓은 지열 지대는 아니지만, 그 안에는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과 엑셀시어 가이저 크레이터(Excelsior Geyser Crater)라는 옐로스톤의 대표적인 지열 명소가 자리한다. 과거에는 이 지역을 ‘헬스 하프 에이커(Hell’s Half Acre)’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뜨거운 물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수증기가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면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입구의 안내판을 확인한 뒤 보드워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녁 8시였지만 7월의 옐로스톤은 아직 햇빛이 남아 있어 주변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었다. 낮게 기울어진 햇살이 숲과 탐방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길게 늘어진 사람들의 그림자가 하얀 지표 위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낮의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보았던 다른 지열 지대와 달리, 이곳에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만의 부드럽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었다. 숙소로 서둘러 돌아갔다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이라는 생각에 피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에는 새로운 기대감이 차올랐다. 계획하지 않았던 멈춤이 이날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또 하나의 행운이 되고 있었다.
뜨거운 물과 수증기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엑셀시어 가이저

탐방로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압도한 것은 거대한 엑셀시어 가이저 크레이터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흰 증기가 탐방로를 향해 한꺼번에 밀려왔고, 순간적으로 맞은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해질 정도였다. 수증기가 지나가고 나면 푸른 하늘과 짙은 녹색의 숲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잠시 후 또 다른 증기구름이 다가와 주변을 감쌌다. 뜨거운 김이 얼굴 가까이 느껴지고 넓은 크레이터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니, 거대한 자연의 숨결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황홀감이 밀려왔다.
사진으로 남긴 크레이터 주변은 수증기가 너무 많아 내부의 물빛을 온전히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다른 지열 지대보다 훨씬 많은 수증기와 수량을 느꼈던 것은 단순한 인상만은 아니었다. 엑셀시어 가이저 크레이터는 약 61미터×91미터 규모이며, 지금도 매분 약 4,000갤런, 우리 단위로 약 1만5천 리터가 넘는 뜨거운 물을 파이어홀강으로 흘려보낸다. 1분마다 대형 물탱크 여러 대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은 물이 계속 배출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의 수증기와 물줄기가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일정한 순간에 높이 솟구치는 분출보다 쉬지 않고 흐르는 막대한 온천수가 자연의 규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엑셀시어는 현재 주로 거대한 온천 크레이터처럼 보이지만 19세기 후반에는 90미터가 넘는 높이로 뜨거운 물을 분출했던 기록이 있는 간헐천이다. 현재는 그런 대규모 분출을 규칙적으로 보여 주지 않지만, 크레이터 안에서 뜨거운 물이 계속 솟아오르고 파이어홀강으로 흘러가며 강의 수계에도 영향을 준다. 과거의 격렬한 활동이 거대한 분화구를 남겼고, 그 안에서는 지금도 지하의 열과 물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큰 분출이 없더라도 이곳이 결코 잠든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얀 수증기가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수증기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뜨거운 온천수와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만날 때 물이 미세한 물방울로 응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흰 구름은 순수한 기체 상태의 수증기라기보다 뜨거운 물에서 올라온 기체가 공기 중에서 식으며 만들어 낸 작은 물방울의 집합에 가깝다. 따라서 기온과 습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같은 온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이날 저녁에는 낮보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크레이터 주변의 증기를 보드워크 쪽으로 밀어오면서 더욱 많은 수증기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뜻한 증기가 얼굴을 감싸자 여행의 피로를 씻어 주는 자연의 온열 공간에 들어온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옐로스톤의 온천수는 온도가 매우 높고 지표가 얇아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피부미용이나 온천욕을 위한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보드워크 위에서 관람하고, 물에 손을 넣거나 지열 지형 가까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 흰 증기가 시야를 가릴 때는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걷는 것도 중요하다.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바라볼 때에만 이 신비로운 풍경을 온전히 즐기고 다음 세대에 보존할 수 있다. 거대한 증기구름 속에서 느낀 희열은 자연을 정복했다는 감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구의 에너지를 안전한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감사함에 가까웠다.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의 빛깔과 여행 마지막의 희열

엑셀시어 가이저를 지나 보드워크를 따라 이동하자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의 중심인 그랜드 프리즈매틱 스프링이 나타났다. 그랜드 프리즈매틱은 옐로스톤에서 가장 큰 온천으로, 지름이 약 61~101미터에 이르고 깊이도 37미터가 넘는다. 지상 보드워크에서는 온천 전체의 원형을 한눈에 보기 어렵지만, 눈앞에 펼쳐진 물과 증기의 규모만으로도 이곳이 평범한 온천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물이 만들어 내는 푸른빛과 가장자리의 노란색·주황색·갈색 지표가 저녁 햇살을 받아 더욱 깊고 따뜻한 색으로 빛났다.
그랜드 프리즈매틱이라는 이름은 빛을 여러 색으로 나누는 프리즘처럼 다양한 색띠가 나타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온천 중심부의 짙은 푸른색은 맑고 깊은 물이 빛의 파장 가운데 푸른빛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여 주기 때문에 나타난다. 온도가 조금 낮아지는 가장자리에서는 고온 환경에 적응한 미생물인 호열성 생물들이 살아가며 노란색과 주황색, 갈색의 띠를 만든다. 각각의 색은 단순히 광물질이 흘러내린 흔적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온도 조건에서 살아가는 미생물 군집이 만들어 낸 생명의 흔적이기도 하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도 그랜드 프리즈매틱의 다양한 색띠가 고온 환경에서 살아가는 서로 다른 호열성 생물의 집단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날은 수증기가 워낙 많아 항공사진에서 보던 그랜드 프리즈매틱의 전체적인 무지개 모양을 선명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유명한 푸른 원형 온천을 한눈에 보지 못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곧 사진과 똑같은 장면만을 기대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따라 수증기가 걷힐 때 잠깐씩 드러나는 푸른 물빛과 주황색 가장자리, 다시 모든 것을 감싸는 흰 증기의 변화는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맑은 날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그랜드 프리즈매틱이 화려한 색의 감동을 준다면, 저녁 보드워크에서 마주한 모습은 온천의 열과 습기, 물소리까지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낮게 비치는 햇살은 넓은 지열 지대와 탐방로를 따뜻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하얀 광물질이 쌓인 대지 위로 보드워크가 길게 이어졌고, 저녁의 긴 그림자와 수증기가 겹치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처럼 신비로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온천 가장자리에서는 뜨거운 물이 가느다란 물길을 따라 흘렀고, 갈색과 주황색의 미생물 매트는 마치 거대한 나무뿌리나 혈관처럼 땅 위에 복잡한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물과 열, 미생물과 광물, 빛과 바람이 함께 완성한 자연의 작품 앞에서 어떤 인공적인 색채도 이보다 섬세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침부터 많은 곳을 둘러보았기에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을 만나기 전에는 이미 충분히 옐로스톤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후 8시의 이곳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다. 파운틴 페인트 팟의 끓어오르는 진흙, 올드 페이스풀의 힘찬 물기둥, 웨스트 섬의 온천과 옐로스톤 호수는 저마다 다른 감동을 주었고, 미드웨이는 엄청난 수량과 수증기, 찬란한 색채로 마지막 희열을 선물했다. 옐로스톤에서는 하나의 명소가 다른 명소를 대신하지 않았다. 같은 지하의 열에서 시작된 지열 현상도 물이 흐르는 통로와 온도, 압력, 미생물의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을 나서며 ‘오늘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라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계획에는 없던 늦은 시간의 방문이었지만 오히려 하루 중 가장 신비롭고 황홀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여행은 유명한 목적지를 정해진 순서대로 확인하는 일만이 아니라, 이동 중에 만난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출 줄 아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어둠이 내려오기 전 숙소를 향해 출발하면서도 창밖으로 피어오르는 하얀 수증기가 오래도록 눈에 밟혔다. 미드웨이에서 느낀 희열은 단순히 많은 물과 증기를 보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구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그 경이로운 순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 벅찬 감동을 남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