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언덕에서 바라본 초원의 바이슨 무리

2022년 7월 16일 오후, 웨스트 섬 가이저 베이슨에서 뜨거운 온천과 옐로스톤 호수를 둘러본 뒤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으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하루 종일 여러 지열 지대와 호수, 숲을 돌아보았지만 옐로스톤의 풍경은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도로 주변으로 완만한 초원과 낮은 언덕이 이어졌고, 멀리 흐르는 강과 굽이치는 도로가 녹색 대지 사이에 한 폭의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불었다.
멀리 펼쳐진 초원에서 검은 점처럼 보이는 여러 동물을 발견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라 넓은 들판에 흩어져 풀을 뜯는 바이슨 무리였다.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귀한 풍경이라고 생각해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언덕에 올라서자 초원과 강,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그 너머로 바이슨들이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한 마리 한 마리의 표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넓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바이슨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일상에서는 동물원의 울타리 안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동물이 이곳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련한 좁은 공간에 동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야생동물의 영역을 잠시 지나가며 관찰하는 방식이었다. 초원의 바이슨은 관광객을 위해 기다려 주지도 않았고 특별한 행동을 보여 주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여 풀을 먹고 천천히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바이슨이 있는 곳은 그 자체로 야생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무대였고,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는 그 무대에 잠시 초대받은 관람객 같았다.
옐로스톤은 미국에서 바이슨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살아온 특별한 지역이다. 또한 공공 토지에 서식하는 미국 바이슨 무리 가운데 매우 중요한 개체군을 보호하는 곳으로 평가된다. 한때 북아메리카 전역에 수천만 마리가 살았던 바이슨은 무분별한 사냥과 서식지 감소로 19세기 후반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다. 오늘날 옐로스톤의 초원에서 큰 무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동물이 많다는 의미를 넘어 오랜 보전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바이슨 무리를 바라보니 자연보호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넓은 서식지를 남겨 주고 오랜 시간 꾸준히 관리할 때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동안 바람은 계속 옷과 머리카락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마저도 광활한 초원과 잘 어울리는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바이슨의 모습을 크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야생동물에게 가장 좋은 관찰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임을 되새겼다.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바이슨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평화롭게 풀을 뜯을 수 있었고, 우리도 자연스러운 무리의 모습을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바이슨이 넓은 들판을 천천히 이동하는 장면은 옐로스톤이 진정한 야생동물의 천국이라는 첫 번째 인상을 깊이 새겨 주었다.
길옆 산자락에서 만난 바이슨 가족

바람 부는 언덕에서 내려와 미드웨이 가이저 베이슨을 관람한 뒤 다시 숙소를 향해 이동했다. 이미 초원에서 많은 바이슨을 보았으니 이날의 특별한 만남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옐로스톤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로 옆 산자락의 침엽수 사이에서 커다란 갈색 몸집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만난 바이슨 무리였다. 평지에서만 생활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들은 경사진 숲과 쓰러진 나무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풀을 먹고 있었다.
나무 사이에는 몸집이 큰 어른 바이슨뿐만 아니라 밝은 갈색 털을 가진 어린 개체들도 함께 있었다. 어미로 보이는 바이슨 주변을 어린 바이슨들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하나의 가족 나들이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몸집이 큰 바이슨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어깨 부분이 높게 솟아 있고 머리와 앞다리가 매우 단단해 보였다. 반면 어린 바이슨은 몸집이 작고 털빛도 더 밝아 어른과 쉽게 구별되었다. 울창한 숲과 고사목, 새로 자라는 어린 나무 사이에 바이슨 가족이 자리한 광경에서는 산불과 생명의 회복, 야생동물의 삶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옐로스톤에서 바이슨을 여러 번 마주치자 처음에는 ‘이곳에는 정말 바이슨이 많구나’라는 단순한 놀라움이 컸다. 하지만 여행이 이어질수록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바이슨이 많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이슨이 살아가는 거대한 터전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초원과 강가, 숲과 산자락은 모두 바이슨의 먹이터이자 이동 공간이었다. 공원 안의 도로 역시 사람만을 위해 자연과 완전히 분리해 만든 통로가 아니라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따라서 운전자는 동물이 언제든 도로 가까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속도를 낮추며 주변을 살펴야 했다.
바이슨은 느긋하고 온순해 보일 때도 있지만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강한 야생동물이다. 가까운 사진을 찍으려고 차에서 내려 접근하거나 무리의 앞뒤를 막는 행동은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바이슨과 엘크를 비롯한 대형 야생동물로부터 최소 25야드, 약 23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안내하고있다. 동물이 먼저 가까이 다가오면 관람객이 뒤로 물러나 안전거리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숲속 무리를 발견했을 때도 차량 안에서 천천히 지나가며 관찰하니 동물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초원과 산자락에서 서로 다른 바이슨 무리를 만난 경험은 옐로스톤이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태계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간헐천과 온천은 지구 내부의 에너지를 드러냈고, 바이슨은 그 대지 위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힘을 보여 주었다. 사람이 만든 울타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 자연 속에서 어른과 어린 바이슨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야생동물 보호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보호한다는 것은 동물을 사람 가까이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먹이를 찾고 이동하며 번식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시간을 보장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도로의 주인이 된 바이슨 가족(바이슨 잼)

숙소를 향해 계속 달리던 오후 8시 40분 무렵, 앞서가던 차량들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처음에는 도로 공사나 사고가 발생한 줄 알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전혀 다른 이유가 보였다. 여러 마리의 바이슨이 도로 위와 갓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몸집이 큰 어른 바이슨 사이에는 밝은 갈색의 어린 바이슨들도 함께했다. 도로 양쪽으로 나뉘어 걷는 모습은 마치 한 가족이 저녁 산책을 나온 것 같았고, 우리는 옐로스톤에서 흔히 ‘바이슨 잼(Bison Jam)’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교통정체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이슨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도로를 이용하던 운전자들의 태도였다. 차량들은 바이슨을 앞지르려고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충분한 간격을 둔 채 천천히 따라갔다. 반대편 차량도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서서 동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누구 하나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지 않았으며, 차에서 내려 바이슨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일정이 늦어지고 이동시간이 길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불평하기보다 이 도로의 우선권이 잠시 바이슨에게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바이슨에게 길을 양보하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가장 빠르고 강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국립공원 안에서는 속도보다 생명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경적을 울리지 않는 작은 배려는 바이슨이 놀라거나 갑자기 달려드는 위험을 줄이고, 어린 개체가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 행동이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관리청도 야생동물 때문에 차량이 정체될 때는 제한속도를 지키고 차 안에 머물며, 촬영이나 관찰이 필요하면 도로가 아닌 지정된 공간을 이용하도록 안내한다. 이처럼 사람이 조금 늦게 가는 선택을 할 때 야생동물은 자신의 이동 경로를 지킬 수 있고, 방문객도 안전하고 귀중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널 때 기다리는 일은 겉으로 보면 몇 분간의 작은 양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장면에는 국립공원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경관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이동과 먹이활동, 번식과 휴식까지 존중하는 것이다. 바이슨을 사람의 편의에 맞춰 쫓아내는 대신 차량이 속도를 낮추고 기다리는 모습에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국립공원의 주인은 관광객도 자동차도 아닌,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아온 모든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1872년 3월 1일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이 국립공원보호법에 서명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탄생했다. 이 지역을 개발과 사유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국민이 함께 누리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공공의 자연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 국립공원 제도가 확산되었고, 자연을 이용하는 것과 지키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자리 잡았다. 우리가 만난 간헐천과 호수, 숲과 폭포, 곰과 엘크, 그리고 수많은 바이슨은 이러한 보호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바이슨 가족이 천천히 도로를 벗어나자 차량들도 서두르지 않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은 정체가 풀렸지만 그 장면이 남긴 감동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옐로스톤의 마지막 날을 돌아보면 거대한 간헐천과 화려한 온천의 색도 잊을 수 없지만, 바이슨이 길을 건너도록 모든 차량이 조용히 기다리던 모습이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최초의 국립공원이라는 위상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관리 원칙과 방문객의 성숙한 행동이 매일 현장에서 이어질 때 그 명성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옐로스톤을 떠나는 길에서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만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어떤 태도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래서 이날의 마지막 풍경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자연보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