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리버 오버룩에서 모압으로

2022년 7월 18일 오후,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그린 리버 오버룩에서 깊은 협곡 아래로 굽이치는 그린강을 감상한 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모압으로 돌아가는 길에 곧바로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오전부터 메사 아치와 벅 캐니언 오버룩, 그랜드 뷰 포인트, 그린 리버 오버룩을 차례로 둘러보며 캐니언랜즈의 장엄한 풍경에 감동했지만,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천연 아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여전히 설렜다. 하루 동안 여러 장소를 돌아보아 몸은 조금 지쳐 있었지만, 새로운 자연경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가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동하던 중 셰보레 렌터카 계기판에 엔진오일과 관련된 경고가 나타났다. 여행 일정도 중요했지만 낯선 지역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자동차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바로 들어가려던 계획을 잠시 미루고 모압으로 이동하여 엔진오일의 양과 상태를 확인한 뒤 필요한 오일을 보충했다. 경고가 해소되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고, 그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먼 길을 달려 준 자동차에 대한 고마움도 새삼 커졌다.
여행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옐로스톤의 숲과 간헐천, 아이다호의 넓은 농경지, 그랜드티턴의 높은 산과 유타의 사막지대를 연결해 준 든든한 동반자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했지만, 그 모든 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준 자동차의 역할은 쉽게 잊고 있었다. 계기판에 나타난 작은 경고등은 자동차도 관심과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시동을 걸었을 때에는 단순히 차량이 움직인다는 안도감을 넘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모압의 개척·광업·관광의 역사

엔진오일을 보충한 뒤에는 모압의 숙소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먼저 마쳤다. 하루 종일 차에 싣고 다니던 짐을 객실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리자 아침부터 이어진 긴 이동이 실감 났다. 모압은 캐니언랜즈와 아치스 국립공원을 방문하기 위한 숙박 거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 이름과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서부의 변화가 응축된 특별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압(Moab)’은 성경에 등장하는 고대 지명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성경의 모압은 요르단강 건너편, 오늘날 요르단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타주 역사자료에서는 모압이라는 이름을 ‘요르단강 너머의 땅’이라는 의미로 설명한다. 1880년 무렵 우편노선이 마련되면서 정착지에 공식 명칭이 필요해졌고, 지역 농부이자 간혹 치과 진료도 했던 윌리엄 피어스가 건조한 사막지대라는 공통점을 생각해 성경 속 지명인 모압을 제안했다. 당시 이곳은 그랜드 밸리, 스패니시 밸리, 모르몬 포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경 속 모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이유로 지명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주민 투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모압이라는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모압의 역사는 유럽계 정착민이 도착한 시기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모압 계곡과 콜로라도고원은 유트족을 비롯하여 나바호족, 파이우트족, 호피족 등 여러 원주민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진 땅이다. 이들은 건조한 환경에서 물과 토지, 식물과 야생동물을 이용하며 살아왔고 자연을 존중하는 생활방식과 전통을 형성했다. 이후 이 지역은 콜로라도강을 비교적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지점이라는 이유로 올드 스패니시 트레일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1855년에는 40여 명의 모르몬교 선교단이 이곳에 엘크 마운틴 미션이라는 정착지를 세우고 요새와 농장을 만들었지만, 토지와 자원을 둘러싼 유트족과의 갈등으로 불과 몇 달 만에 철수했다. 1870년대부터 목장주와 농민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비교적 지속적인 정착이 시작되었다.
초기의 모압 경제는 농업과 목축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콜로라도강 주변의 물과 비옥한 토지를 이용해 과일과 채소를 생산했고, 모압의 농산물이 다른 지역에 알려지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 전화와 상수도, 전기와 자동차가 보급되고 콜로라도강을 건너는 다리가 건설되면서 작은 정착지는 점차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1952년 찰리 스틴이 대규모 우라늄 광맥을 발견하면서 모압은 또 한 번 크게 변했다. 전국에서 광부와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인구가 약 1,200명에서 6,500명 규모로 급증했고, 한때 ‘세계 우라늄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광산업이 번성했다. 그러나 우라늄산업이 쇠퇴하면서 모압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했다. 1960년대 이후 아치스와 캐니언랜즈 일대의 자연경관이 알려지면서 관광과 야외활동이 새로운 중심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모압은 광산도시에서 국립공원과 모험여행의 중심지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 보니 우리가 머문 모압은 단순히 숙소와 주유소가 있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원주민의 오래된 삶과 개척민의 정착, 농업과 목축, 우라늄산업의 흥망을 거쳐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한 장소였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나에게는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서 물을 확보하고 농경지를 일구었던 초기 주민들의 노력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모압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적응하고 산업을 변화시키며 도시를 이어 온 역사의 현장이었다.
아치스 국립공원 언덕에서 내려다본 모압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자 오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차량 상태도 안정되었고 숙소까지 확보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치스 국립공원 방문을 다음 날로 미룰 수도 있었지만, 아직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차량 점검으로 일정이 늦어졌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계획이 어긋났다고 여행 전체를 포기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자유여행이 주는 경험이었다.
오후 4시쯤 아치스 국립공원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정확한 명칭은 흔히 잘못 부르는 ‘아처스 캐년’이 아니라 아치스 국립공원이다. 공원은 모압에서 북쪽으로 약 5마일 떨어져 있으며, 입구 안쪽에는 공원에서 유일한 방문자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붉은 바위산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진 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자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는 설렘이 밀려왔다. 오전에는 캐니언랜즈의 깊고 광대한 협곡을 내려다보았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천연 아치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또 다른 자연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하나의 거대한 협곡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아니라 붉은 사암 절벽과 바위기둥, 균형을 유지한 바위와 수많은 천연 아치가 넓게 분포한 국립공원이다. 자동차로 포장된 경관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주요 전망대와 트레일 입구에 접근할 수 있어, 여행자의 일정과 체력에 맞게 드라이브와 산책을 조합할 수 있다. 이곳의 바위에는 약 2억 년에 걸친 지질학적 역사가 담겨 있다. 여러 종류의 사암층이 지하 소금층의 움직임으로 갈라지고 융기한 뒤, 비와 바람, 얼음과 기온 변화에 의해 침식되면서 수직 암벽과 좁은 바위 능선이 형성되었다. 이후 약한 부분이 먼저 깎이면서 구멍이 생기고, 그것이 점차 확대되어 오늘날의 천연 아치가 만들어졌다.
방문자센터를 지나자 도로는 붉은 사암 절벽 사이를 굽이돌며 가파르게 올라갔다. 아래에서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던 암벽이 점점 가까워졌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나온 길과 모압 주변의 넓은 평야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초입의 전망 공간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높은 언덕에서 모압 방향을 바라보니 붉은 바위산과 광활한 황야 사이에 작은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보충하고 숙소에 체크인했던 도시가 발아래 펼쳐지자 감회가 새로웠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모압은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의 집합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품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원주민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땅이었고, 올드 스패니시 트레일의 강 건너는 길목이었으며, 개척민들이 농업과 목축을 시작한 정착지였다. 한때는 우라늄을 찾아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 광산도시였고, 이제는 아치스와 캐니언랜즈를 찾는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관문이 되었다. 국립공원 안쪽에서 모압을 내려다보니 척박한 사막 속에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해 온 과정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후 햇빛을 받은 붉은 바위는 불꽃처럼 선명했고, 그 아래 펼쳐진 모압은 거대한 자연이 품고 있는 작은 쉼터처럼 보였다. 캐니언랜즈가 물이 깎아 만든 깊이와 규모를 보여 주었다면, 아치스 국립공원은 지층의 움직임과 풍화가 만들어 낸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모압은 이 두 자연세계 사이에서 여행자에게 숙소와 음식, 연료와 차량 정비를 제공하며 여행을 이어 주는 든든한 중심지였다.
엔진오일 경고로 잠시 멈춰야 했던 하루였지만, 그 멈춤 뒤에 다시 만난 풍경이어서 감동은 더욱 컸다. 모압 방향으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한 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경관도로를 따라 파크 애비뉴와 코트하우스 타워, 밸런스드 록과 여러 천연 아치가 기다리는 공원 안쪽으로 이동할 차례였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시작한 아치스 국립공원 여행은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모압이라는 도시의 의미와 역사까지 발견하게 해 주었다. 좋은 여행은 유명한 장소를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장소를 이어 주는 도시와 길, 사람과 자동차의 역할까지 이해하고 감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