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서 시작되어 리버티섬까지 이어진 설렘

2019년 7월 5일, 새벽에 호텔 화재경보로 대피하는 소동을 겪은 뒤 다시 뉴욕으로 향했다. 실제 화재가 아닌 경보설비의 문제로 확인되어 안도했지만, 잠을 설친 탓에 몸에는 피로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날은 뉴욕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이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만큼 자유와 독립의 의미를 생각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찾는 일정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배를 타고 뉴욕항으로 나아갈 때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넓게 깔려 있었다. 리버티섬의 자유의 여신상은 멀리서 작은 연녹색 형상으로 서 있었다. 배가 이동하면서 여신상은 점차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높이 든 횃불과 머리의 뾰족한 왕관, 왼손에 안고 있는 석판의 윤곽도 조금씩 분명해졌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난간 가까이 모여 사진을 찍었고, 나 역시 눈앞에 나타난 자유의 여신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 수없이 보았던 장소지만 실제 배 위에서 마주한 모습은 전혀 달랐다. 자유의 여신상만 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흔들리는 뉴욕항의 물결과 리버티섬의 나무, 주변을 오가는 배와 함께 보이니 이 조형물이 왜 뉴욕항의 상징이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이민자가 대서양을 건너와 처음 이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두려움과 희망도 떠올랐다. 나에게는 즐거운 여행의 한 장면이었지만, 과거의 이민자들에게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후가 되자 흐렸던 하늘이 점차 걷히고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나타났다. 햇빛을 받은 자유의 여신상은 오전보다 더욱 선명한 연녹색으로 빛났으며, 뒤쪽으로는 뉴욕과 뉴저지의 고층건물들이 희미하게 펼쳐졌다. 같은 날 같은 장소였지만 날씨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흐린 오전의 여신상이 묵묵히 역사를 지켜온 존재처럼 보였다면, 맑은 오후의 모습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횃불을 밝히는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리버티섬에 도착해 여신상 가까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을 때는 배에서 바라볼 때와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기단과 동상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고, 하늘을 향해 뻗은 오른팔에서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함께 여행한 가족과 여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며, 먼 한국에서 이곳까지 와서 세계적인 역사유산을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새벽의 불안과 피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여행을 무사히 계속할 수 있다는 기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프랑스의 선물에서 자유의 상징이 되기까지
자유의 여신상의 공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 영어로는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미국 독립 100주년과 미국·프랑스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이 미국 국민에게 선물한 조형물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동상을 제안했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전체 형상을 설계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뒤 여러 부분으로 분해되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으며, 뉴욕항의 섬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1886년 10월 28일 공식적으로 헌정되면서 오늘날까지 뉴욕항을 지키는 상징이 되었다.
동상의 오른손에 들린 횃불은 어둠을 밝히는 계몽과 자유의 빛을 의미한다. 왼손의 석판에는 미국 독립선언일인 1776년 7월 4일이 로마숫자로 새겨져 있다. 머리 위의 일곱 갈래 광선은 자유의 빛이 널리 퍼져나가는 모습을 나타내며, 발밑에는 끊어진 족쇄와 사슬이 놓여 있다. 앞으로 내딛는 오른발과 끊어진 사슬은 억압과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전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각각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외부를 덮고 있는 재료는 얇게 가공한 구리판이다.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연녹색이 아니라 구리 특유의 갈색을 띠었지만, 오랜 세월 뉴욕항의 비와 바람, 공기와 접촉하면서 표면에 녹청이 형성되었다. 이 녹청은 자유의 여신상에 독특한 색을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내부의 구리를 부식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세월의 흔적이 건축물을 낡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과 보호막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의 대형 구리 전시물 가까이에 서 보니 동상의 규모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멀리서는 비교적 작게 보이던 발과 옷자락이 실제 크기로 표현된 전시 앞에서는 사람의 키가 매우 작게 느껴졌다. 구리판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연결된 모습과 표면의 이음선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 만든 조각상이 아니라 얇은 구리판을 두드려 형상을 만들고 이를 철골구조에 연결했다는 사실은 기술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에서는 여신상의 구리 외피 안에 복잡한 철골 골조가 설치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조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은 중앙 철탑과 유연한 지지구조를 설계해 얇은 구리 외피가 강한 바닷바람과 온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조각과 내부의 튼튼한 철골구조가 서로 협력해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농업기계와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연구해 온 나에게는 바르톨디의 예술적 구상과 에펠의 공학기술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결합되었다는 점이 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2019년 5월 문을 연 자유의 여신상 박물관에는 여신상의 기원과 설계, 제작과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내가 방문한 2019년 7월은 박물관이 개관한 지 약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여신상의 구조와 역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외부에서 사진만 찍었다면 알지 못했을 제작기술과 보존 노력까지 확인하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예술작품인 동시에 19세기 공학기술의 뛰어난 성취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민자의 희망, 자유와 평등
자유의 여신상은 처음에는 미국 독립과 프랑스·미국의 우정을 기념하는 조형물로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가난과 박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오랜 항해 끝에 뉴욕항에 들어온 이민자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았을 때, 높이 든 횃불은 새로운 삶과 기회를 알리는 희망의 불빛처럼 보였을 것이다.
리버티섬 인근의 엘리스섬은 약 1,200만 명의 이민자가 입국심사를 거친 역사적인 장소다. 사람들은 가족과 고향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그들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유와 기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했다. 배 위에서 여신상을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가 편안한 여행자로 지나가는 이 바닷길을 과거의 이민자들은 얼마나 복잡한 마음으로 건넜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이 즉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이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이민자들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자유는 이미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모든 세대가 계속 실현해 나가야 할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는 나만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과 권리, 존엄성도 함께 존중할 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가진다.
새벽 호텔 대피 과정에서 보았던 투숙객들의 시민의식도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은 자신만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질서정연하게 대피했다. 소방당국의 안내에 따르고 어린이와 노약자의 안전을 살피는 행동은 공동체의 자유와 안전을 함께 지키는 책임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자유의 여신상 앞에 서니,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려면 법과 질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여신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유명 관광지를 직접 방문했다는 기쁨이 컸지만, 박물관을 둘러보고 역사와 구조를 이해한 뒤에는 그 사진의 의미가 더 깊어졌다. 프랑스와 미국의 협력, 조각가와 기술자의 노력,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의 희망, 자유와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사람의 역사가 여신상 한 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에서 보고 박물관의 내부 구조 모형과 구리 외피 전시를 살펴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상징과 보이지 않는 기반의 관계도 생각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려면 내부의 골조가 구리 외피를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지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사회도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튼튼하게 받쳐주어야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외부의 아름다움과 내부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자유의 여신상은 하나의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원리까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리버티섬을 떠나며 다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배가 멀어질수록 여신상의 모습은 작아졌지만, 마음속에 남은 감동과 의미는 오히려 커졌다. 흐린 오전부터 맑게 갠 오후까지 여신상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고,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으며, 박물관에서 숨겨진 구조와 역사를 살펴본 경험은 뉴욕 여행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나에게 단순한 관광명소가 아니라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의 권리와 안전을 존중하는 시민의 노력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장소였다. 높이 든 횃불은 지금도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빛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