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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앞에서 생각한 자유와 평화(인트레피드, 자주국방)

blog7709 2026. 8. 21. 08:21

자유의 여신상에서 항공모함 인트레피드까지

 

 

2019년 7월 5일, 리버티섬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박물관을 둘러본 뒤 뉴욕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오전에는 회색 구름이 뉴욕항을 덮고 있었지만 오후가 되자 파란 하늘이 나타났고, 자유의 여신상 주변도 밝은 햇빛으로 빛났다. 리버티섬의 넓은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가족과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높이 펄럭이는 성조기 뒤로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한 맨해튼의 고층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유와 이민의 역사, 그리고 9·11 테러 이후 다시 일어선 뉴욕의 모습이 하나의 풍경 안에 겹쳐 보였다.

리버티섬을 떠나 맨해튼 서쪽을 지나던 중 허드슨강 피어 86에 정박한 거대한 항공모함을 발견했다. 선체 앞부분에는 ‘INTREPID’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 배는 현재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으로 사용되는 퇴역 항공모함 인트레피드(CV-11)다. 차량이 빠르게 오가는 도로 건너편에 거대한 군함이 정박해 있고 비행갑판 위에는 여러 항공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다 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군함이 뉴욕 도심의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유의 여신상과 인트레피드는 모습과 역할이 전혀 다르지만 이날 나에게는 서로 연결된 상징으로 다가왔다. 자유의 여신상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보여준다면, 항공모함은 그러한 가치를 현실에서 지키기 위해 국가가 갖추어야 했던 힘과 희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쪽에는 횃불을 든 여신상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전쟁의 상처를 견딘 항공모함이 정박해 있었다. 자유를 선언하는 것과 그 자유를 지키는 일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군함을 보며 전쟁의 힘만을 찬양하고 싶지는 않았다. 군사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침략을 억제하고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보호하는 데 있어야 한다. 리버티섬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허드슨강에 정박한 항공모함을 차례로 바라보니, 평범한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걷고 웃을 수 있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 국방의 최종 목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전쟁과 우주개발의 역사를 간직한 인트레피드

 

인트레피드는 미국 해군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으로, 1943년 8월 16일 취역했다. ‘인트레피드’라는 이름은 두려움 없이 용감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어 마셜제도와 필리핀, 오키나와 주변의 여러 작전에 참여했으며, 1944년에는 역사상 가장 큰 해전 중 하나인 레이테만 해전에도 참가했다. 전쟁 기간 어뢰 공격과 여러 차례의 가미카제 공격을 받았지만 승조원들은 화재를 진압하고 손상된 선체를 복구하며 임무를 이어갔다.

인트레피드의 역사는 군함의 강력한 무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배를 포기하지 않고 불길과 침수를 막았던 승조원들의 용기, 부상자를 돌본 의료진, 손상된 장비를 복구한 정비요원과 기술자의 노력이 함께 담겨 있다. 실제 전쟁에서는 승리라는 결과 뒤에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이 존재한다. 항공모함의 거대한 선체를 바라보면서 전쟁을 영웅적인 이야기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트레피드는 제트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현대화되었고, 냉전기에는 대잠수함 작전과 북대서양 감시활동에 참여했다. 베트남전쟁에도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군사 임무뿐 아니라 미국의 우주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2년에는 머큐리 계획의 우주비행사 스콧 카펜터와 오로라 7 우주선을 회수했고, 1965년에는 제미니 3호의 우주비행사 거스 그리섬과 존 영, 우주캡슐을 바다에서 회수했다. 항공모함이 전쟁의 도구를 넘어 우주비행사의 안전한 귀환을 지원한 구조함으로도 활약한 것이다.

인트레피드는 1974년 최종 퇴역한 후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보존운동을 통해 살아남아 1982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은 항공모함뿐 아니라 다양한 항공기와 잠수함, 우주왕복선 등을 전시하며 군사·항공·우주기술의 역사를 교육하는 장소가 되었다. 전쟁에 사용되었던 거대한 함정이 다음 세대에게 역사의 교훈과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전하는 교육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던 2019년 당시에는 도로 건너편에서 외관만 바라보았지만, 갑판 위에 전시된 항공기와 함교, 거대한 선체만으로도 항공모함의 규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함정을 건조하고 운용하려면 조선·기계·항공·전자·통신기술과 수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한 척의 항공모함은 단순한 배가 아니라 한 국가의 산업기술과 조직운영 능력이 집약된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로 살아온 나에게 인트레피드는 군사력의 상징인 동시에 과학기술과 인재양성이 국가안보의 기반임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미국의 역할과 우리나라의 자주국방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여러 국제분쟁을 거치며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질서와 해상교통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미국의 군사활동에 대해서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와 논쟁이 존재한다. 모든 전쟁과 군사개입을 ‘자유를 위한 행동’이라는 한 문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미국과 유엔 참전국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한 사실은 잊을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젊은이가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 희생 위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었다.

뉴욕항의 항공모함을 바라보며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동맹은 국가안보의 중요한 축이지만, 다른 나라의 힘에만 의존해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부정하거나 혼자서 모든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 스스로 국민과 영토를 지킬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그 기반 위에서 동맹국과 책임 있게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준비된 국가만이 동맹관계에서도 신뢰받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했지만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나라로 발전했다. 이러한 산업기반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국방역량을 높이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우리 기술로 만든 군함과 잠수함, 항공기와 방공체계, 통신장비 등이 발전한 것은 연구자와 기술자, 생산현장의 근로자, 군 장병과 방위산업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다. 국방력은 무기를 많이 보유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핵심기술을 연구하는 대학과 연구소, 안정적으로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정확하게 장비를 운용하고 정비하는 인재가 함께 있어야 한다.

자주국방은 군사기술뿐 아니라 식량, 에너지, 사이버보안과 첨단산업의 경쟁력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전쟁이나 국제적 위기가 발생하면 무기만이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 통신망과 물류체계의 안정성도 국민의 생존을 좌우한다. 농업기계와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연구해 온 경험을 돌아보면, 안정적인 식량생산과 에너지기술 역시 국가안보와 분리할 수 없는 분야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며 핵심기술을 국내에서 확보하는 일도 평화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국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군사력의 확대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강한 국방력은 국민에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주기 위한 힘이 아니라 상대가 쉽게 침략하지 못하게 하는 억제력이어야 한다. 동시에 외교와 국제협력, 상호신뢰를 통해 갈등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화는 군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법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시민, 맡은 분야에서 기술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국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다.

리버티섬에서 펄럭이던 성조기와 뉴욕항의 인트레피드를 바라본 하루는 자유가 결코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자유의 뒤에는 나라를 지킨 군인들의 희생, 장비를 개발한 과학자와 기술자의 노력, 그리고 평화를 선택하려는 시민들의 책임이 있었다. 미국의 거대한 항공모함을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도 우리 현실에 맞는 국방역량과 과학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고 느꼈다.

뉴욕의 도로 건너편에서 인트레피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평화로운 일상을 떠올렸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고, 학생이 자유롭게 공부하며, 연구자가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일상은 튼튼한 안보와 성숙한 민주주의 위에서 가능하다. USS 인트레피드는 나에게 전쟁의 승리를 자랑하는 군함이라기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했던 희생을 기억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을 일깨워준 역사적인 장소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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