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도시 토론토를 향한 설렘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마무리하던 중 “토론토까지 자동차로 약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라는 일행의 제안을 들었다. 토론토는 처음 계획한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캐나다를 대표하는 도시를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교통 상황에 따라 이동 시간은 달라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망설임보다 호기심을 선택해 토론토로 향했다. 나이아가라 지역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넓은 들판과 온타리오호 주변의 풍경이 차창을 스쳐 갔다. 갑자기 추가된 일정이라 준비한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정해진 답이 없는 여행이어서 목적지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도시로 가까이 갈수록 차선은 넓어지고 건물은 높아졌으며 차량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도로 옆에 조성된 ‘TORONTO’ 표지와 단정하게 관리된 화단을 보았을 때 비로소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짧은 영문 표지였지만 장거리 이동 끝에 마주한 우리에게는 거대한 환영 문구처럼 느껴졌다. 토론토라는 지명은 원주민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지역에는 유럽계 정착민이 오기 훨씬 전부터 여러 원주민 공동체가 살아왔다. 이후 ‘요크’라고 불리던 마을은 1834년 3월 6일 토론토라는 이름의 도시로 공식 편입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 바라보니 토론토 표지는 단순한 도시명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삶이 겹쳐진 이름으로 다가왔다.
토론토는 캐나다의 수도는 아니지만 온타리오주의 주도이자 캐나다를 대표하는 대도시이다. 처음 보는 거리인데도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에서 이 도시의 개방적인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기에 머무를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체류 시간의 길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내린 결정 하나가 새로운 역사와 풍경을 만나게 해 주었고, 낯선 도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선물해 주었다. 도로변의 토론토 표지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며, 오늘의 즉흥적인 선택이 오랫동안 기억될 특별한 장면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BMO 필드와 붉은 노면전차

토론토 시내로 들어오며 먼저 눈길을 끈 곳은 넓게 펼쳐진 관중석과 붉은 좌석이 인상적인 BMO 필드였다. 엑시비션 플레이스에 자리한 이 경기장은 2007년 문을 열었으며, 캐나다 최초의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조성되었다. 캐나다 최초의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참가팀인 토론토 FC의 홈구장이자 캐나다 축구를 상징하는 무대 가운데 하나이다. 경기 당일은 아니어서 관중의 함성을 직접 들을 수 없었지만, 텅 빈 좌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이 뛰고 시민들이 함께 환호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스포츠 경기장은 승패를 결정하는 공간인 동시에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팀을 응원하며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스포츠는 경기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경기가 열리면 관중이 이동하고 주변의 음식점과 숙박시설, 교통수단과 상점에도 활기가 생긴다. 선수와 구단뿐 아니라 시설관리, 방송, 관광, 광고 등 다양한 분야가 연결된다는 점에서 경기장은 도시경제를 움직이는 하나의 중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수를 보며 꿈을 키우고, 가족과 친구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추억을 만드는 모습은 경제적 수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BMO 필드를 지나며 거대한 도시가 스포츠를 통해 어떻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지 생각했고, 다음에는 실제 경기가 열리는 날 다시 방문해 그 열기를 직접 느껴 보고 싶어졌다.
도심에 들어서자 또 다른 토론토의 상징인 붉고 흰 노면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한국의 일상적인 도심 풍경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교통수단이라 도로 위의 선로와 복잡하게 이어진 전선을 한참 바라보았다. 토론토에서는 일반 자동차와 노면전차가 같은 도로 공간을 공유하고, 승객은 거리 가까운 곳에서 타고 내린다. 처음에는 자동차와 전차가 뒤섞인 모습이 낯설었지만, 정류장마다 사람들을 태우며 천천히 도심을 연결하는 모습에서 오랜 도시의 생활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토론토의 전기 노면전차는 1892년 운행을 시작했고 1894년에는 노선의 전철화가 완성되었다. 오늘날의 현대적인 차량은 달라졌지만, 철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동의 전통은 한 세기가 넘도록 도시의 일상을 지켜 왔다.
오래된 첨탑과 고층 빌딩 사이에서 발견한 토론토의 힘
토론토 중심부를 지나면서 오래된 벽돌 건물과 높이 솟은 교회의 첨탑, 유리로 둘러싸인 현대식 고층 건물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을 견딘 건축물과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의 모습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거리에는 출퇴근하는 시민과 관광객, 자전거 이용자와 노면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뉴욕과는 또 다른 속도였다. 분명 국제적인 대도시이지만 곳곳에 나무와 공원이 있고, 오래된 건축물 주변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남아 있었다. 복잡함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도시의 태도가 느껴졌다.
토론토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비즈니스·금융 중심지이며 금융, 기술, 생명과학, 친환경 에너지, 식품, 디자인, 영화와 디지털 콘텐츠 등 여러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특정 산업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인재가 모인다는 점이 토론토 경제의 중요한 강점이다. 온타리오호를 기반으로 형성된 교통과 물류의 이점, 미국 주요 도시들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인구 역시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리에서 여러 언어가 들리고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식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모습은 다양성이 관광의 장점일 뿐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토론토에서 받은 감동은 유명한 건물 하나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BMO 필드에서는 스포츠가 도시를 결속시키는 힘을 보았고, 노면전차에서는 오래된 교통체계가 현재의 생활과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했다. 역사적인 첨탑과 현대식 빌딩이 함께 서 있는 거리에서는 과거를 보존하면서 미래 산업을 받아들이는 도시의 균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라는 가벼운 제안으로 출발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한 도시의 역사와 경제, 시민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여행은 미리 작성한 일정표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마음에 담아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토론토의 표지와 경기장, 붉은 노면전차는 각각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오래된 흔적을 소중히 지키는 도시의 모습은 앞으로의 삶에도 필요한 태도를 생각하게 했다. 짧았지만 풍성했던 토론토 방문은 계획 밖에서 만난 선물이었고, 언젠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찾아와 더 많은 골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