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지나 다시 열린 미국행
2019년 미국 여행을 마친 뒤 이듬해인 2020년에도 다시 미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가 간 이동은 물론 일상적인 만남까지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 이어졌다. 항공편이 줄어들고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졌으며,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한 뒤에도 미국에서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시간은 자주 생각났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 속에서 평범한 이동과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을 기다린 끝에 2022년 6월 다시 미국을 찾았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린 것처럼 설렘과 감사가 컸다. 공항에 도착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미국의 공기와 풍경을 마주하자 2019년 여행의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이전에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살던 친척이 서쪽에 있는 헤이마켓으로 이사한 것이다. 센터빌도 나무와 공원이 많은 쾌적한 지역이었지만 헤이마켓은 주택 주변에 숲과 넓은 녹지가 더 가까이 있어 한층 여유롭고 전원적인 느낌을 주었다. 집 가까이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집과 주변을 둘러보니, 정원과 숲이 주거공간의 일부처럼 이어져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와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는 긴 코로나19 기간 동안 쌓였던 답답함을 씻어 주는 듯했다. 3년 전에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다시 찾은 미국에서는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며 같은 식탁에 앉는 평범한 순간까지 감사하게 느껴졌다. 헤이마켓으로의 이동은 단순히 숙소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중단됐던 여행과 가족의 시간이 다시 이어지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초록빛 트레일에서 우연히 만난 사슴 가족

2022년 6월 29일 아침, 이른 시간에 집 주변을 산책하러 나섰다. 집 가까이에 조성된 트레일로 들어가자 차량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울창한 나무와 풀, 새들의 울음소리가 산책길을 채웠다. 포장된 길은 숲 사이로 부드럽게 굽어 있었고, 양쪽에서는 여름의 짙은 녹음이 터널처럼 이어졌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해 길 위에 작은 무늬를 만들었으며, 아침의 서늘한 공기와 풀냄새가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주택단지에서 몇 걸음 걸어왔을 뿐인데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책로를 천천히 걷던 중 앞쪽에서 움직이는 갈색 형체가 보였다. 자세히 바라보니 두 마리의 사슴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한 마리가 앞서가고 다른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르는 모습은 다정한 사슴 가족처럼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 놀라 걸음을 멈췄고, 사슴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슴들도 잠시 이쪽을 살피더니 서두르지 않고 숲길을 따라 걸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야생동물과 같은 길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연과 여행에서 멀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만남은 자연이 보내는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다.
헤이마켓이 속한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에는 숲과 초지, 호수 주변을 걷는 다양한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다. 카운티는 현재 60마일이 넘는 산책로를 관리하고 있으며, 헤이마켓의 실버레이크 지역공원과 제임스 S. 롱 지역공원에도 숲을 통과하는 여러 산책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내가 걸었던 정확한 산책로를 이들 공원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주거지역 가까이에서 자연과 연결되는 헤이마켓의 환경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주택과 도로를 건설하면서도 기존의 숲과 녹지를 남기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로 연결한 모습이 부러웠다. 자연은 특별한 날 자동차를 타고 멀리 찾아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매일 아침 걸어서 만날 수 있는 생활공간이 될 수 있었다. 숲길에서 만난 사슴 가족은 헤이마켓의 자연환경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준 존재였다. 녹음이 짙은 길을 따라 멀어지는 사슴들을 바라보며, 사람과 야생동물이 가까운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동물과 불편한 이웃, 공존의 의미를 생각하다
나에게 사슴 가족과의 만남은 뜻밖의 선물이었지만,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친척과 지역 주민들은 사슴이 정원에 심은 꽃과 채소를 먹고 농작물과 어린 나무를 훼손하기 때문에 마냥 반가운 동물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때로는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어 자동차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운전자에게도 주의가 필요한 존재라고 했다. 나의 눈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동물이지만,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주민에게는 농작물과 정원을 해치는 유해동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버지니아 야생동물자원국도 흰꼬리사슴을 많은 주민이 관찰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대표적인 야생동물로 소개한다. 동시에 사슴은 농작물과 나무, 정원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도로에서는 교통안전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개체 수가 지나치게 증가하면 어린 나무와 숲의 식생을 많이 먹어 자연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사슴을 무조건 보호하거나 반대로 단순한 유해동물로만 판단하기보다는, 주민의 안전과 농업 피해 그리고 생태계의 균형을 함께 고려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슴이 예쁘고 반갑다는 이유로 가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는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행동이 달라지고 질병 전파나 사람·반려동물과의 충돌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에서는 사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연중 금지되어 있다. 야생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까이 불러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하는 일이라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헤이마켓의 숲길에서 만난 사슴 가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 생활의 현실을 동시에 생각하게 했다. 내가 잠시 보고 감동한 풍경 뒤에는 정원을 지키려는 주민의 노력과 농작물 피해를 걱정하는 농민, 야생동물의 개체 수를 관리해야 하는 지역사회의 고민이 함께 존재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모두 없애서도 안 되지만,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감정만으로 주민들의 피해를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에서 마주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화려한 관광명소가 아니라 아침 숲길을 걸어가는 두 마리의 사슴이었다. 그 짧은 만남은 코로나19 이후 되찾은 이동의 자유와 가족을 다시 만난 감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한꺼번에 생각하게 했다. 사슴들이 숲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초록빛 길과 조용한 뒷모습은 오랫동안 눈앞에 남아 있었다. 헤이마켓은 나에게 잃어버렸던 일상의 소중함과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다시 배운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