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 아래 펼쳐진 붉은 봉우리

숙소에서 편안하게 첫날밤을 보내고 처마 아래 자리 잡은 제비집을 바라본 뒤, 부푼 마음을 안고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 전망대 쪽으로 걸어갈 때까지도 사진에서 보았던 풍경이 실제로 얼마나 클지 정확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절벽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동안 말을 잇기 어려웠다. 붉은색과 주황색, 흰색이 겹겹이 섞인 수많은 바위 봉우리가 거대한 원형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 개의 기암괴석이 모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돌기둥이 골짜기 끝까지 이어져, 마치 자연이 만든 거대한 도시를 위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가까운 곳의 봉우리는 햇빛을 받아 밝은 주황색으로 빛났고,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바위는 짙은 붉은색과 갈색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그 뒤로는 푸른 숲과 멀리 이어지는 고원이 층층이 펼쳐져 붉은 암석과 강한 대비를 이루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바위기둥의 모습과 색깔이 달라졌다. 어떤 것은 뾰족한 성의 첨탑처럼 보였고, 어떤 것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나 오래된 사원의 기둥처럼 느껴졌다. 같은 장소를 바라보던 일행들도 각자 다른 모양을 발견하며 감탄했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이름과 달리 하나의 강이 깊게 파낸 전형적인 협곡이라기보다, 고원 가장자리가 침식되면서 형성된 여러 개의 거대한 자연 원형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불규칙한 돌기둥은 ‘후두(Hoodoo)’라고 불리며, 브라이스 원형극장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후두가 집중되어 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의 브라이스 캐니언 지형 안내 사진으로 볼 때는 아름다운 붉은 봉우리로만 생각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 규모와 깊이를 마주하니 인간이 만든 어떤 조형물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웅장함이 전해졌다. 수많은 돌기둥 앞에 선 나는 자연의 긴 시간 속에서 잠시 이곳을 방문한 작은 여행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과 빗물이 완성한 수많은 후두의 신비
전망대에서 붉은 봉우리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든 후두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늘고 높게 솟은 기둥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개의 봉우리가 하나의 성벽처럼 연결된 곳도 있었다. 위쪽에는 단단한 바위가 모자처럼 얹혀 있고 아래쪽은 가늘게 깎인 형상도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만 있는 것처럼 보였던 지층에는 주황색과 분홍색, 흰색이 섞여 있었으며, 햇빛과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색의 농도도 계속 달라졌다. 자연이 오랜 시간 동안 한 층씩 색을 입히고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암석은 약 5천만 년 전 호수와 범람원에 쌓인 퇴적물이 굳으며 형성되었다. 이후 지각이 융기해 높은 고원이 되었고, 비와 눈, 얼음이 약한 암석을 깎으면서 현재의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졌다. 특히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간 물이 추운 밤에 얼어 팽창하고 낮에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암석은 조금씩 부서진다. 처음에는 넓은 벽처럼 이어져 있던 바위가 얇은 지느러미 모양의 핀(fin)이 되고, 창문과 같은 구멍이 생긴 다음, 주변 암석이 떨어져 나가면 독립된 후두로 남게 된다.
이 설명을 알고 다시 풍경을 바라보니 후두 하나하나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오랜 세월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비 한 방울과 눈 한 조각의 힘은 눈앞에서 바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반복되면 거대한 고원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는다. 그 사실은 자연의 끈기와 생명력을 함께 생각하게 했다. 숙소 처마 아래에서 작은 재료를 여러 번 물어다 둥지를 완성한 제비의 모습과, 물과 얼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돌기둥을 만든 과정이 마음속에서 겹쳐졌다. 하나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지질작용이지만,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이어진 작은 변화가 놀라운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었다.
브라이스 포인트 아래에서 발견한 거대한 악어

수많은 바위 형상을 살펴보던 중 길고 울퉁불퉁하게 뻗은 암석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넓적한 머리와 긴 등, 거칠게 솟은 돌기가 마치 거대한 악어가 붉은 바위 사이에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여행자가 상상으로 붙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라이스 포인트 아래에는 실제로 ‘디 앨리게이터(The Alligator)’라고 불리는 지형이 존재한다. 여러 개의 후두로 완전히 분리되기 전 단계인 긴 핀 형태의 암석으로, 위쪽에는 일반 석회암보다 침식에 강한 돌로마이트층이 덮여 있다. 이 단단한 윗부분이 아래의 상대적으로 약한 암석을 보호하면서 오래 유지되는 독특한 형상을 만든 것이다.
악어바위를 바라보자 브라이스 캐니언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거대한 악어가 수많은 붉은 봉우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누워 사람들의 상상력을 깨우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같은 바위에서 다른 동물이나 성벽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은 정해진 답을 보여 주기보다 바라보는 사람의 경험과 상상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이것이 브라이스 캐니언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방문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했다.
전망대에서는 웅장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절벽과 바위가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후두는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조각상이 아니다. 비와 눈, 바람과 얼음에 의해 계속 깎이며 언젠가는 무너지고,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지정된 전망대와 탐방로를 이용하고, 보호시설 밖으로 나가거나 바위에 올라서는 행동을 삼가는 것이 이 자연유산을 지키는 기본적인 태도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의 시간은 유명한 명소를 확인한 관광에 그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진 붉은 후두 앞에서는 자연의 웅장함을 느꼈고, 악어를 닮은 바위에서는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상상력과 즐거움을 발견했다. 수천만 년의 시간이 만든 풍경을 내가 살아가는 짧은 순간에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했다. 전망대를 떠나면서도 햇빛을 받은 붉은 봉우리와 그 사이에 누운 거대한 악어의 모습은 쉽게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 서부 여행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인 동시에, 시간과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오래 남을 감동이었다.